우선 천민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천민이란 양인 밑의 신분, 즉 노비 등의 사람을 말했으며 실제로 천민은 성씨 자체가 없었으며 과거(문과)에 응시마저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위의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천민이 아니였다는 것을 증명해드리겠습니다.
우선 지씨를 보겠습니다.
지가(池家)는 고려 때에 平章事(수상급) 36명을 배출한 명문 거족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10명 이상의 문과급제자를 배출해 내었습니다.
여기서 '고려 때에 수상급 36명을 배출한 가문이 왜 조선시대에는 10명 대의
급제자만 나왔을까' 하시는 분이 계실텝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지가(池家)는 고려 때 번영했던 가문이었던 만큼,
이성계가 반란을 일으켜(이조혁명)왕조가 바뀌고나서도 충심으로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모두 정권에 손도 대지 않고 다만 무신의 길로 나아가 나라를 지키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 예로 17代 池 湧奇 공은 고려왕조에서 보기 드문 훌륭한 지도자였으며
이성계와 지극히 가까운 사이시면서도, 지조와 절개를 지키시다가 밀려나게 되셨으며,
포은 정몽주 선생이 참살됨을 통분하게 생각하시고, 말도 않고, 먹지도 않고, 눕지도 않고, 잠자지 않으시고, 13일 만에 앉아서 절명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조선시대에는 무과에서도 매우 훌륭한 공신들이 대거 나오게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천씨를 보겠습니다.
천씨는 ‘하늘 천(天)’자와 ‘일천 천(千)’자를 쓰는 두 경우가 있습니다.
천(天)씨는 5개의 본관에있는데, 조선 정조 때 천명익이 진사시에 합격한 것으로 봐서 천계는 아닙니다.
영양 천씨(潁陽 千氏)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구원군으로 온 귀화 성씨로서 중시조 천만리가 자헌대부와 화산군에 책봉 받았으니 이 또한 천계가 아닙니다.
다음으로 방씨를 보겠습니다.
방씨도 대표격인 온양 방씨(溫陽 方氏)의 경우 중간 시조로 알려진 방운이
고려 성종 때 온수(온양)군(君)에 봉해지자 온양을 본관으로 삼은 것입니다.
남양 방씨(南陽 房氏)는 고려 때 벽상공신 삼중대광보국을 역임한 방계홍을 1세 조상으로 하고 있으며, 개성 방씨(開城 龐氏)도 고려 때 원나라 노국대장 공주를 따라 온 원나라 벼슬아치
방두현을 시조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 천계는 아닙니다.
이상으로 대표적인 성씨 3개를 예로 보여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통설이 생겨났을까?' 하는 의문이 생겨납니다.
가장 큰 이유는 그간 일제하에서 일제 고등경찰이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근거없이 지어내 주민들에게 퍼트린 말들이 그럴듯하게 들리자 일부 유식한듯한 몰지각한 식자층에서 인용한 말이 천방지축 마골피 등등입니다.
다시말해 이런 말은 듣고 말할 가치조차 없으며 일본인들이 한민족 이간책으로 지어낸 말임을 다시한번 되새기면서 민족의 단결을 해치려는 술책에 현대에 와서까지 넘어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1] 천( 千 )씨 - 정유재란때 귀화한 중국계성씨
우리 나라 족보를 보면 70%가 자신의 시조를 중국인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중국에서 귀화한 중국계는 많지 않습니다. 대개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들어서기 직전 혼란한 시기( 이 시기가 무협지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강호의 세계입니다. ), 명나라가 망하는 시기에 주로 많이 조선으로 들어왔는데 " 충장공 천만리 "라는 분은 바로 정유재란후 조선에 귀화하여 오늘날 한국의 천씨의 시조가 되신 분입니다.
[2] 방( 房 )씨 - 고구려에 귀화한 중국인의 후손 or 고구려인의 후예(?)
시조 방준( 房俊 )이 당나라에서 고구려( 말기 )에 귀하하였다고 전해지며, 실제 시조( 중시조 )는 고려시대 벽상공신의 작위를 받은 방계홍부터라고 합니다. 실제 중국계인지, 아니면 망국( 고구려 )의 백성임을 숨기기위해서 그런 것인지는 저도 의문이 생깁니다. 저는 고구려인의 후예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 외 통일신라시대 중국에서 귀화하였다는 방( 方 )씨가 있으나 이도 신라인으로서 중국의 성을 빌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극소수이지만 방( 龐 )씨와 방( 邦 )씨도 있는데 모두 각각 명나라 건국기와 멸망기에 귀화한 중국계라고 합니다.
[3] 지( 池 )씨 - 천년 무인( 武人 ) 명문세족인 이중( 二重 )성씨
태조왕건시대에 시조 지중익이 어( 魚 )씨성을 하사받아 지씨와 어씨 두 개성씨로 고려, 조선을 이어온 성씨입니다. 지씨와 어씨는 문반보다는 무관쪽으로 고려와 조선을 이어 천년세도를 누린 성씨입니다. 특히 세조시대 만주의 호랑이로 불린 어유소장군이 유명하지요.
[4] 마( 馬 )씨 - 고구려 동명성왕의 후손
물론 동명성왕의 직계손이 아니라 동명성왕과 같이 남하한 신하 마려( 馬黎 )의 직계손입니다. 마려는 후에 온조왕과 함께 서울로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하기에 이릅니다. 아마 고구려, 백제의 실질적인 건국자이며, 이 두나라의 " 정도전 "인 셈이지요.
물론 중국 한대( 漢代 ) 전설적인 명장인 복파장군 마원( 馬援 )의 후손임을 자체하는 성씨도 소수이지만 있다고 합니다.
[5] 피( 皮 )씨 - 춘추시대 유명한 협객 번중피의 후손
협객하면 무협지의 섬뜩한 무사를 연상하는데 실제 협객의 시조는 " 공자 "나 손자병법의 " 손자 "처럼 춘추각국을 돌아다니며 사상과 지혜를 파는 국가를 초월한 전략가들입니다. "번중피"도 당시 " 손자 "만큼이나 유명한 전략가였습니다. 그 분의 이름 맨 뒷글자를 따서 성을 만들었는데 족보에는 송나라 시대 고려에 귀화하였다고 전해지나 아마 " 번중피 "가 워낙 유명한 분이기에 고려의 호족( 귀족 )이 그분의 이름을 빌려와 성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축씨와 골씨는 현재 한국에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6] " 천방지축마골피 "가 천한 성으로 오인받는 이유
아마 중국에서부터 이런 말이 생기지 않았나 사료됩니다. 한자도 우리나라 성씨와는 다릅니다. 우리나라 성씨의 " 千-房-池-馬-皮 "가 아니라 " 天邦支竺馬骨皮 "로서,
천( 天 )씨와 축( 竺 )씨는 과거 천축국( 天竺國:인도 )에서 온 승려들이나 귀화한 인도인이 쓴 성씨입니다. 지( 支 )씨는 과거 월지족( 月支族 )의 후예이지요. 삼국지의 손권도 " 월지족 "이라고 합니다. 오늘 날 " 타슈켄트( 우즈베키스탄 ) "와 " 키르키즈키스탄 " 등 중앙아시아 투르케스탄 민족과 같은 계열의 서역인이지요. 골( 骨 )씨도 위구르인을 한자로 음역한 " 회홀 "또는 " 회골 "의 그 " 골 "입니다. 바로 서역인의 후예이지요.
마( 馬 )씨는 중국에 귀화한 아랍계 후예가 마호멧의 후손임을 주장하여 스스로를 마( 馬 )씨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중국에는 마원의 후손 마씨와 아랍계 마씨가 있지요. 한국에서도 아랍계 " 덕수장( 張 )씨 "와 회홀계 설( 卨 )씨가 있지요. 피씨와 방씨는 저도 그 근원을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오랭캐성씨인 것 같습니다.
천방지축마골피가 오랑캐성씨로 중국에서 멸시를 받다가 조선에 와서도
천한 성씨로여겨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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