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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의 탄생

숯두루지 송회장 2012. 9. 10. 17:12

[ 성씨의 유래 ] 
  ●신라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성의 기원은 아무래도 신라에서 연원한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박, 석, 김 3성과 이, 최, 손, 정, 배, 설의 6촌성에서 연원을 찾는것이 더 합리적 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3성과 6촌성이 당초부터 그러한 성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후대에 당나라 문화의 영향을 받아 중국식 성을 사용하게 되면서 각각 계보를 소급하여 붙인 것이라 하며 그들은 성을 소급해서 붙일 수 있는 확실한 계보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며 그 계보의 주체가 되는 친족 공동체는 그 전부터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예는 진흥왕의 순수비로 서울의 북한산비, 창녕비, 함흥의 황초령비, 이원의 마운령비등의 비문에 나타난 수행자 명단을 보면 이름만 기록되어 있고 성이 없으며 대신 그 사람의 출신부명이 밝혀져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진지왕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대구의 무술오작비나 진편왕 때 세워진 경주의 남산 신성비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7세기 초까지만 해도 아직 성씨가 쓰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수 있으며 , 성씨가 쓰이기 전에는 신분을 표시하는 역활을 했던것은 그 사 람의 출신지이다. 다만 왕실에서는 24대 진흥왕 때부터 김씨를 사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가령  에는 '신라왕 모태가 처음 사신을 보내왔다'고 나와 있는데, 모태란 23대 법흥왕을 가리킨 것이다. 그런데 에는 법흥왕 다음 임금인 진흥왕을 김진흥, 진평왕을 김진평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신라 왕실의 김씨를 제외한 그 밖의 6촌성들은 그보다 훨씬 뒤인 중기에야 비로소 등장하게 된다. 다만 가락국의 시조로 알려진 수로왕의 12대손인 김유신은 제외이다. 가락국이 법흥왕때에 신라에 의해 병밥 흡수되면서 가락 왕실의 직계 후예가 신라 최고 신분인 진골에 편입되었음을 말해주고 있고, 김유신의 누이가 태종무열왕의 비가 되면서부터 김유신이 처음으로 김씨를 사용하게 된것 같다는 설도 있다.
신라 시대의 성씨로는 3성과 6촌성외에 9세기 초 당나라에 갔다온 후 청해진 대사가 된 장보고가 처음 장씨로 등장하였고,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이르러서야 많은 새 성 의 등장을 보게 된다.

 

●고구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건국 초기 인물의 성씨가 많이 보인다.
동명성왕이 신하들에 게 성을 내려 주었다는 극,, 중실, 소실씨 등과 유리왕이 사성하였다는 위,우씨 또는 대무신왕이 사성하였다는 낙, 부정, 대실씨 등은 전설이라고 하더라도 제 3대 대무신 왕때의 을두지, 송옥구를 비롯하여 이후 재상급만도 목도루, 고복장, 명림답부, 을파 소, 고우루, 명림어수, 음우, 창조리, 을지문덕, 연개소문 등등의 이름이 있으며, 또 한 왕비나 왕모의 성으로 예, 송, 우, 연, 주씨 등이 나오고 있다. 결국 고구려에서 쓰인 성은 왕실의 해, 고를 비롯하여 을, 송, 목, 창, 예, 우, 연, 주, 명림, 을지등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 무렵의 성은 후대의 성과는 개념을 달리하는 것으로서 중앙 또는 지방세력 중에서도 핵을 이루는 유력한 족장들의 정치적 신분과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성씨 중에서 고구려에 연원을 두는 성씨는 극히 드물다.
고씨는 고주몽의 후손이 강원도 횡성 지방에 약간 산재한다고 전해지고 그 외의 고씨 는 모두 탐라 고씨계이다. 오직 강씨가 고구려의 장군이었다는 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있다.

 

●백제
백제가 부족국가의 단계를 넘어 고대 국가로 출발한 것은 제8대 고이왕 시대부터인데 왕실의 성을 처음엔 우씨로 하다가 뒤에 여씨 또는 부여씨로 썼다.
백제 초기의 왕권은 이른바 8대 성의 귀족에 의해 크게 제약을 받았다.
8대 성이란 사, 연,이,해,진,국,목,백씨의 8족을 말함인데 이 중 '국'을 골라서 골로 기록한 사기도 있다.
이 외에 동부에 홀씨가 있었고 목리만치, 조미걸취, 제증걸루, 고이만년, 흑치상지 등의 이름이 보인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성씨 중에서 고구려에 연원을 두는 성씨도 극히 드물다.
온조를 따라 남하하여 백제 건국에 공을 세우고 십제공신이 되었다는 전섭과 마여를 원조로 하는 전씨와 마씨가 있다.
개루왕때 인물인 도미를 선계로 하는 성주도씨가 있으며, 백제가 망하자 당나라로 망명하여 당 고종으로부터 서로 사성받고 웅진도독이 되어 귀국했다는 부여융을 시조로 하는 부여서씨가 있다.

이 외에 백제 8대 성과 같은 성으로 진씨,연씨,국씨가 현재도 있기는 하나 그 연원이 분명치 않다.

출처 : 숯두루지 송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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