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대비와의 관계
청주 한씨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이 청주 한씨가 권력과 관계기 매우 깊은 집이고 인수대비가 태어나기전에 이미 두 고모가 영락제,선덕제의 후궁에서 총애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인수대비의 아버지인 한확은 왕도 건드리지 못할 강한 권세를 가지게 되죠. 계유정난이 일어나기 3년전에 수양대군의 아들 도원군 숭과 결혼해 군부인이 되고 후에 수양대군이 단종으로부터 양위를 받아 세자빈이 되죠. 나중에 둘째아들을 낳은 후 얼마 안되 남편이 요절해서 정빈으로 봉해져 출궁되고 후에 수빈으로 고쳐지게 됩니다. 그녀의 성격 때문에 세조 내외는 폭빈이라 불렀구요. 하지만 인수대비는 둘째아들을 한명회의 딸과 결혼 시키며 정희왕후와 밀접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가집니다. 결국 시동생인 예종이 죽고 아직 갓난아기인 제안대군만 남겨놓자 한명회와 정희왕후를 등에 얻고 둘째아들을 왕으로 등극시키는데 성공합니다. 아들이 왕위에 올랐지만 여전히 빈의 지위에 있었습니다만 왕의 생모이기 때문에 궁에 계속 있을수 있었죠,나중에 애매한 지위 때문에 논의가 열렸고 처음에는 인수왕비,성종 2년에 남편이 덕종으로 추존되자 인수대비가 됩니다. 인수대비는 한자도 잘 알았고 유교경전과 범어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왕실 최고어른인 정희왕후가 사망하자 인수대비가 왕실 최고 어른 자리를 꽤 차게 되죠, 이때 성종이 이젠 어린 나이가 아니어서 정치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지만 성종이 워낙 효자이기도 하고 인수대비의 뜻에 거스른적이 별로 없어서 간접적으로는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참고로 연산군이 인수대비에게 왜 제 어머니를 죽이셨습니까 하면서 머리로 인수대비의 배를 들이받는건 야사에 써있는거지 실록에는 전혀 없는 말입니다. 왜 제 어머니를 죽이셨습니까 라고는 했지만 배를 들이받지는 않았죠, 그저 불손한 말이 많았다고만 적혀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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