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1392-1398

[스크랩] 연도와 날짜로 알아본 한양 천도

숯두루지 송회장 2012. 9. 10. 16:44

1392(태조1)

7. 17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창

 

8. 13

태조가 한양 천도를 천명

1393(태조 2)

1. 2

권중화가 수도로 계룡산을 건의

 

2. 10

계룡산으로 수도 확정, 건설 시작

 

12. 11

하륜의 반대로 수도 건설 중지되고

태조는 새 도읍지 재검토 지시

1394(태조 3)

2. 23

하륜은 무악으로 천도 주장

 

7. 4

도평의사사에서 경기도 선점 탐사

 

7. 5

도평의사사에서 경기도 일사 탐사

 

8. 11

태조가 무악毋岳(현재 신촌 일대)에 도착

 

8. 12

천도 논의, 백악산 아래(한양)에 도착

 

8. 13

한양 천도 결정

 

8. 16

태조가 광실원 경기도 탐사

 

8. 18

태조가 도라산 경기도 탐사

 

10. 25

천도(한양으로 출발)

 

10. 28

한양 도착

1398(7)

8. 26

왕자(이방원)의 난

1399(1)

3. 7

정종이 개성으로 환도

1405(5)

10. 11

태종은 한양으로 재천도

 

 

한양 건설 과정

건국

1392(태조1)

 

 

 

 

1394(태조3)

한양 천도

 

 

 

1395(태조4)

궁궐, 종묘와 사직 완성

 

 

 

1396(태조5)

도성 건설 (20만 명, 98일간)

1차 왕자(방원)의 난

1398(태조7)

성균관, 육조 건설

 

 

정종 즉위

 

1399(정종1)

개성 천도

 

 

2차 왕자(방간)의 난

1400(정종2)

 

 

 

태종 즉위

 

1405(태종5)

한양 재천도, 창덕궁 건설

 

 

1412(태종12)

시전 건설 (2천 칸)

개천 공사 (5만여 명)

 

세종 즉위

1418(세종 즉위년)

 

 

 

 

1422(세종4)

도성 보수 (32만 명, 38일간)

 

1428(세종10)

도로 정비

 

 

 

 

서울역사박물관  상설전시장이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그 중 내용 발췌했습니다.

출처 : 서울KYC도성길라잡이
글쓴이 : 1기 김영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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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초에 조선 조정은 세 번에 걸쳐 수도를 옮겼다. 태조 3년에 개경의 기운이 다 됐다는 이유로 한양으로 천도했다가 1398년 정종 원년에는 한양을 버리고 개경으로 다시 왕궁을 옮겼다. 이 때 개경으로 다시 옮겨 간 이유는 우선 한양의 시설이 미비하여 개경을 그리워하는 신민들 의 정이 심각하다는 것이었고 다음으로는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왕실의 큰 불상사인 골육상잔의 참변이 일어났다 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경으로 옮겨 간 이후에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정종은 세제 방원에게 왕권을 물려주 었다. 태종은 등극하자마자 태조의 뜻을 이어 다시 한양으로 천도하려 했으나 신하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해 실행치 못하다가 1404년(태종5년) 9월에 경복궁이 준공되자 한양 천도를 단행하였다. 이 후로 한양은 5백년 동안 조선의 문 화와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다.